성반 15번 정주성

내가 재수를 처음하기로 마음먹은 날은 수능이 끝난 날부터였다. 수능시험장을 나와 집으로 가며 답안을 슬쩍 확인해 보았을 때부터 였었나? 동네 근처로 마중 나온 동생을 보고 나는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몇 대나 놓쳤는지 모른 채 시험을 망쳤다는 속상함, 부모님을 1년 더 수험생을 둔 부모로 만들었다는 죄송함 등등... 밖에서 처음으로 그렇게 목 놓아 엉엉 울었다. 그때가 벌써 1년이 지나갔고, 나는 감사하게도 부모님께서 재수를 허락해 주셔서 이곳 기숙학원에서 40일을 남겨둔 채 체험수기를 쓰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선행반때 입소해서 선배들이 체험수기를 읽을 때 친구들과 ‘체험수기를 쓰고 나가는 날이 올까?’ 아니 재수가 끝나가는 하나 ㅋㅋㅋㅋ ‘ 하며 농담반 진담반으로 이야기를 한지도 10개월. 헐.... 내가 학원으로 차타고 오면서 처음 든 생각은 ’감옥 같다‘였다. 시설은 원래 큰 기대를 안했던 터라. 내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이곳의 생활은 종소리로 시작해서 종소리로 끝나는데 처음에는 굉장히 딱딱하고 힘들게만 느껴졌다. 특히 처음 1주일이 말이다. 하지만 나보다 2주정도 먼저 들어왔던 친구들의 배려로 남들보다 더 빨이 적응할 수 있었고, 수업도 생활도 나름대로 만족스러웠다. 지금 생각하니 오길 참 잘했다고 느낀다.

지금까지 학원생활을 하면서 가장 뼈저리게 느꼈던 것들은 ‘내가 했던 공부는 공부가 아니었다’는 것, ‘옆에 있을 때 잘 하자’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떻게든 깡으로 버텨야 한다’ 네 가지이다. 고등학교를 다니며 야자를 해도 학교수업, 학원 스케줄, 집에 들어가면 피곤함과 나태함에 치여 내가 확보할 수 있는 자습시간은 하루에 많아 봤자 네 시간?(지금 생각해 보면 매우 부끄럽다)

하지만 이곳에서 처음으로 정말 질리도록 오죽하면 수업이 듣고 싶을 정도로 자습을 해 보았는데, 이전까지 내가 한 것은 공부가 아니라 공부하는 시늉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시 이렇게 공부하라고 하면 욕이 나올 정도로 제대로 공부하는 방법, 자습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

그 다음으로 내게 가장 크게 의미있게 다가왔던 깨달음은 ‘옆에 있을 때 잘 하자’ 난생처음 태어나서 가족과 오래 떨어져 보았는데, 밑반찬이 맨날 똑같다고 투정부리고, 동생한테 짜증내던 순간들이 가장 많이 떠올라 미안했다. 이곳에서 가족에게 오는 택배 속에 아주 짧게 나마라도 들어있는 엄마의 쪽지, 동생의 편지는 내가 재수생활을 하면서 당장 모든 것을 놓고 도망가고 싶을 때 나를 달래주고 잡아주는, 살면서 받은 가장 값진 선물이 되었다. 가족 덕분에 이 만큼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느낀다. 수능 끝나고 가족 곁으로 돌아가게 되면 올해 못했던 만큼 더 잘 해야지.

마지막으로 나는 학원에서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살면서 나의 인생에 밑거름이 될 수 있는 ‘끈기’ ‘인내심’을 배웠다. 부끄럽게도 나는 인터넷강의를 한 번도 완강을 해 본적도 문제집을 몇 번씩 돌려 본적도, 성실하게 수업을 빼먹지 않고 들은 적도 없었다. 이곳에서 처음 인터넷 강의 완강을 해 보았고, 기출문제도 외울 정도로 보았고, 수업도 빼먹지 않고 성실하게 들어봤다. 20살, 모든 게 허락되고 해방되는 나이에 재수라는 길을 택하고, ‘나는 왜 그럴까’하는 자책감, ‘왜 더 열심히 하지 않았을까’하는 후회, ‘다 포기하고 싶다’라는 좌절감, ‘확실하지 않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극복하며 인내하고 노력하는 한 해를 보내는 지금, 나는 재수라는 선택을 절대로 후회하지 않는다.

우리 할아버지께서도 말씀하셨다. “주성아, 성공하든 실패하든 네 인생에서 정말 값진 경험하는 거다. 너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과정이니, 무슨 일이 있어도 악으로 깡으로 버텨라‘라고, 인내하는 한 해를 보내게 되어 정말 뿌듯하다. 정말로 값지다. 수능이 약 한달 남은 지금도 장담할 수는 없지만, 끝까지 인내하여 좋은 결과를 얻도록 노력하겠다!

마지막으로 한번 더, 재수를 허락해 주신 부모님, 늘 내 걱정해주시며 챙겨주시는 할머니, 할아버지, 동생, 친구들, 늘 정말 정말 고맙고, 감사하고, 사랑한다.

남은 40여일도 인내하며 최선을 다 하자! 최선을 다 하자! 나는 할 수 있다! 파이팅!!